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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예술

동양 미술 - 한국의 백자

by O고라니O 2024.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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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백자에 대해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백자는 백토로 만들어 무색의 투명한 유약을 입혀 구워낸 자기 중 하나입니다. 한국의 백자는 중국의 기술을 기반으로 발전했으며, 고려 말기부터 조선시대에 거쳐 발전하였습니다. 당시 고려청자에 비해 두각을 내지는 못했지만, 음각, 양각, 상감 등 다양한 기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조선 건국후 나라가 안정을 찾아가며 전국에 많은 가마가 만들어졌으며, 도자기 제작도 활기를 띄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의 유교사상과 더불어 백자의 견고하고 깨끗한 백자를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왕실과 궁궐에서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도 백자를 활용하였습니다. 백자의 유명한 작품 몇 가지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백자상감모란문병

15세기 조선시대 작품으로 현재 서울 호암미술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크기는 높이 28.8cm로 은은하고 해사스러운 흰 살갗은 도자기 위에 활짝 핀 모란 한 송이가 흑상감 형태로 그려져 있습니다. 또한 병목에 둘러진 띄 무늬의 테두리는 참으로 솔직해 보이며 투명하게 느껴집니다.

백자의 유질이 고려 청자의 계통을 이어온 것으로 보이며 조선 초기의 새로운 문화를 일구는데 큰 힘을 주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2. 백자철회용문 항아리

백자철회용문 항아리를 처음 사진으로 접하면 혹시 어린아이가 그림을 그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난감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용을 본사람은 없고, 꿈에서 본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본 적이 없는 그림을 그리려면 누군가의 그림을 흉내 내거나 상상력을 동원해 그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항아리의 용 그림은 작가 본인이 상상하고 꿈속에서 본 용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시선에서 보면 익살스러운 용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조선시대의 도공들은 이 그림처럼 순박하고 천진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대충 찍은듯한 점들과 구불구불한 모양의 선으로 그려진 용의 몸체는 네모난 입을 중심으로 어리석은 듯한 얼굴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철화백자는 대개 자유로운 시골 민간 사기 가마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격식이나 제약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스러움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백자는 유난히 회백색이어서 일반 백자와는 여러모로 다른데가 많습니다. 아마도 이 백자가 만들어졌을 시기 이렇게 회화적으로 용을 그려낸 것으로 보아 이 그릇을 쓰는 사람들이나 만들어낸 사람들이나 모두 마음이 천하태평 근심걱정 없던 시기였을 것이라 추측해 봅니다.

백자
출처- 리움미술관

3. 백자 달항아리

17세기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높이 41.2cm의 항아리는 아무런 무늬 없이 고유한 흰색을 보여주는 항아리입니다. 얼핏 보기에 옛날 요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흰 빛깔과 둥근 모양은 한국의 조형미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백자 항아리를 수십 개 모아놓고 보면 마치 시골 장터에 모인 아낙네들의 흰옷 입은 모습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한국은 백의민족이라는 수식어 답게 우리의 흰 옷과 백자 항아리의 흰색은 같은 느낌을 줍니다. 주변 나라의 일본이나 중국이 다양한 색채의 자기나 사기그릇을 만들던 시대에 우리는 흰빛의 조화를 유유히 즐겨 왔으니 백의민족 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조선 자기의 아름다움은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신비롭고 천연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4. 백사진사채모 깎기 항아리

19세기 조선시대 작품으로 얼핏 주사위 모양 같이 보이는 이 항아리는 높이 18.4cm로 그리 크지 않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비교적 근대에 까까운 시대에 제작된 항아리입니다. 축구공 같은 무늬가 그려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순백 흰 바탕에 주홍색 무늬를 장식한 진사백자는 색채가 흔하지 않은 한국 도자기 중에서도 색다른 존재입니다.

둥근 항아리의 몸체를 모깎기 한 모양은 때로는 10면, 때로는 11면이 될 때도 있습니다. 무늬의 위치도 격식에 얽매이지 않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장식무늬의 효과나 조형미의 아름다움을 제작한 도공은 잘 알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항아리 목 주변에 그린 연꽃무늬의 길고 짧은 앉음새는 연속해서 그리지 않고 네 군데 나누어 그렸고, 둘씩 겹쳐 그린 둥근 무늬 안에 그려진 추상적인 무늬의 근대적 감각은 현대 공예가 못지않은 실력을 가졌다 볼 수 있습니다.

동그란 원 안에 하늘을 나는 새 무늬임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양의 백자는 원래부터 전해진 수가 적었을뿐더러 공예미에 일찍 눈 뜬 일본이나 서양 사람들에 의해 바다 건너갔으며 국내에는 몇 없는 귀한 작품입니다.

 

5. 청와백자목련문 왕사발

엷은 청화백색 맑고 시원한 백자 바탕에 쪽빛 청화로 목련꽃 한 그루를 돌려 그린 그림의 왕사발은 한국 사람들의 조촐한 삶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얼핏 국그릇, 물사발 그릇처럼 보이는 이 그릇은 18세기 영조, 정조 시대 문예 중흥의 기운을 받아 만들어진 걸작 중 하나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6. 청화백자선도연적

청화백자선도연적은 조선시대 15세기 아주 자그마한 크기 높이 7.7cm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연적이라 함은 벼루에 먹을 갈 때 쓰는 물을 담아두는 그릇으로 자그마한 크기에서도 지조와 도량 있는 모습이 숨어있는 듯 보입니다.

문방구는 대개 연적 하나라도 문인이 직접 선택해 사용하는 경우가 보통이며 그것을 만드는 사람도 사용하는 사람들의 안목에 맞춰 세련된 모습으로 서로의 호흡을 맞추어 가는 듯 보입니다.

한국의 연적은 대개 수수한 모습이며 조선 초기의 백자연적들은 보통 순백자이며, 15세기말 16세기 무렵에 청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니 이 시대의 백자연적에 청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그릇보다 연적에 그린 청화백자연적은 더 희귀한 예술품이며 검은 소나무 그림이 한층 돋보입니다.

 

7. 청화백자운학문 베갯모

요즘은 보기 드문 베갯모이며 조선시대 사람들은 특이하게 베갯모에 십장생이나 원앙침 같은 베갯모, 자개장식을 입힌 자개 베갯모, 나무판을 새겨서 만든 목 베갯목 등 종류가 적지 않습니다. 원앙을 쌍쌍이 수놓은 원앙침에는 부부의 금슬과 부귀다남을 바라는 서민적인 꿈이 실려있고, 푸른 하늘에 청초한 운학문 베갯모는 이상의 세계가 품어져 있습니다.

운학 무늬는 12세기 초 고려청자의 상감이나 돋을무늬에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려청자에 그려진 운학무늬들은 마치 사람들에게 길들여진 것처럼 따스한 느낌을 주는 그림으로 고려 시대 운학 무늬보다 정감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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